[LST의 맨유이야기 = 박현성의 맨유선수 파헤치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가상으로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해서 축하파티를 한다고 치자. 파티가 한창 무르익었는데 고참인 폴 스콜스가 아직 도착하지 않는다. 다들 왜 늦을까 궁금해 하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게 전화하지 못한다. (스콜스가 약속시간에 늦는다는 것도 상상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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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아무도 그의 전화번호를 모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베컴은 자서전에서 동료 선수들 중 한 명도 스콜스의 전화번호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었다) 내성적이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이 작은 선수는 경기장 내에서는 자기 성격과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플레이한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헤딩슛을 성공시키는 데에도 능하며, 거리에 상관없이 패스를 배급하고, 그의 오른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슈팅은 '로켓 런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한 때 프리미어십의 전문가들은 가장 강력한 슈터로 스콜스와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를 꼽은 바 있다) 게다가 맨유의 팬들은 그가 가끔씩 범하는 어리석은 태클마저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만큼 그의 장점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맨유의 훈련생 시절을 거쳐 프로데뷔까지
폴 스콜스는 1974년 11월 16일 맨체스터 근처의 살포드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올드햄 애슬레틱을 서포트했던 스콜스는 14살이 되던 해에 맨유의 연습생이 되면서 한 평생을 바치게 될 클럽과 연을 맺게 되었다. 1993년 FA 유스컵에 데이비드 베컴, 개리 네빌 등과 함께 출전해 결승전까지 진출했던 그는 1993년 7월 정식 프로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가 뛰는 포지션에는 '올드 트래포드의 킹' 에릭 칸토나가 버티고 있었고 니키 버트나 다른 동년배 선수들에 비해 데뷔전은 다소 늦게 치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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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포트 베일과의 리그컵에서 두 골을 성공시키며 인상적인 데뷔전을 치렀지만 이후에도 주전자리를 완벽하게 차지했다고는 할 수 없었고, 1997-98시즌 로이 킨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던 때가 바로 정기적으로 선발 라인업에 포함될 수 있었던 시점이었다.
트레블의 주역,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무대에는 뛸 수 없었던 스콜스
1998-99시즌 맨유는 역사적인 트레블을 달성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스콜스는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하였다. 로이 킨과 맨유의 중앙을 책임지면서 리그를 지배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인터 밀란, 유벤투스 등 쟁쟁한 팀들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했다. 또한 뉴캐슬과의 FA컵 결승전에서 득점에 성공하며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해냈다. 하지만, 가장 화려한 무대인 바이에른 뮌헨과의 챔피언스리그에는 로이 킨과 함께 경고누적으로 결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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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 포지션이 아닌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던 2001-02 시즌에는 루드 반 니스텔루이와 파트너십을 이루며 그 시즌 모든 대회를 통틀어 20골을 득점했고, 이는 그의 커리어에서 세운 시즌 최다득점이었다. 또한 맨유는 그의 득점을 바탕으로 전 시즌 아스날에게 빼앗겼던 리그 트로피를 되찾아오는 데 성공했다.
2004년 국가대표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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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이후로 98년 프랑스월드컵과 유로 2000, 2002 한일 월드컵, 유로 2004를 거치며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중원을 책임진 스콜스는 가족과 클럽에 충실하고 싶다는 이유로 국가대표에서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그 이후 잉글랜드를 책임진 모든 감독들은 그를 회유하여 국가대표로 복귀시키고자 했지만, 스콜스는 한 번 내린 결정을 번복하지 않고 지켜오고 있다.
시력장애 후 신무기 장착
2005-06시즌 갑작스레 찾아온 시력장애로 은퇴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2006-07시즌 돌아온 스콜스는 4년 만에 리그 우승 트로피를 되찾아오는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새롭게 영입된 마이클 캐릭과 호흡을 맞추며 플레이한 중원에서 스콜스의 시야와 패싱은 맨유 공격의 시발점이었다. 그 당시 PFA 올해의 선수상은 팀 동료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돌아갔지만, 티에리 앙리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과 전문가들은 스콜스의 활약을 더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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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시즌 기록한 90%가 넘는 패스 성공률은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높은 수치며, 그 덕분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등은 상대 수비의 배후를 여유 있게 노릴 수 있었다. 예전만큼 득점을 하기 위해 페널티 박스로 침투하는 횟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렇지 않고서도 팀의 득점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그의 능력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퍼거슨이 중요한 경기에는 그를 최우선적으로 기용하는 요인이다.
9년 만에 다시 찾아온 기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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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에도 여전히 간결한 볼터치와 가장 위협적인 곳으로 정확하게 배달되는 패스를 공급하며 아직 늙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선발출장을 보장한 퍼거슨 감독에게 동정심이 아닌 실력으로 선발 출장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스콜스는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100번째 경기였던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그에게 찾아온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시켰으며, 옐로카드를 받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 갑작스런 부상이 없는 한 결승전 출장은 거의 확보해 놓은 상태이다.
진정한 축구선수, 폴 스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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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른 수많은 축구선수와는 달리 에이전트를 데리고 있지 않으며, 팀과의 재계약 협상 등의 일을 본인이 스스로 처리한다. 팀이 제시하는 조건에 토를 달지 않고 사인을 해버리는 그에게서는 맨유에 뼈를 묻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계약 과정에서 잡음이 없고, 팀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 국가대표까지 은퇴했으며, 언론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는 아마도 퍼거슨 감독이 지금까지 데리고 있었던 선수들 중에 가장 소중한 선수일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작지만, '거인'이라고 가히 불릴 만 하다.
스콜스의 프로필
이름:
Paul Aaron Scholes
출생:
1974년 11월 16일, 잉글랜드의 살포드에서 태어남
포지션:
미드필더
맨유 데뷔전:
1994년 9월 21일 (리그컵, 對포트 베일, 베일 파크)
주요 경력:
FA 커뮤니티쉴드 (1994, 1996, 1997, 2003, 2007)
프리미어리그 (1996, 1997, 1999, 2000, 2001, 2003, 2007)
FA컵 (1996, 1999, 2004)
UEFA 챰피언스리그 (1999)
잉글랜드 리그컵 (2006)
(LST 미디어 박현성 기자 blog.daum.net/lst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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